적폐해석

CotL-나린더와 샤무라, 그리고 전해지지 않았던 서로의 감정을 정리한 헤드캐논

신아는 무얼하고 사나 2025. 4. 19. 18:29

 

거미줄 위에 샤무라와 나린더가 등을 맞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나린더는 외로움을 쉽게 드러내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샤무라는 그 감정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샤무라는 나린더가 사슬에 묶인 뒤에도 애임과 바알을 선물한 것일테다.
그러나 샤무라는 ‘맏이’이자 ‘옛 신앙’이라는 공동체의 중심을 지키는 이성적인 인물이었기에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의무와 균형을 더 중시하였다. [각주:1]

하지만 샤무라는 말을 아끼는 대신, 행동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근거로 샤무라는 “mercy is not my name…”(“자비는 내 이름이 아니다...”) 라고 말했지만, 나린더는 “Shamura was weak, not wise.”(“샤무라는 약하고 현명하지 못했다.”)라고 회상하기 때문이다.

Shamura: Spin my web, I catch my prey… spin my web, day by day… in the night… I hear them pray… mercy is not my name… / Narinder: Shamura was weak, not wise. Their vision was too small to contain the multitudes of one such as I.

 

전쟁과 지식의 주교(신)인 샤무라에게 이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샤무라는 누구보다도 너그러웠고, 나린더에게 보호자와도 같은 존재였음을 반증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샤무라를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여겼으며 감정적으로도 크게 의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린더는 배신당했다. 가족들은 자신을 이단자로 규정했고 사슬로 묶었다. 심지어 유일한 이해자라 믿었던 샤무라가 자신을 사슬로 묶자고 제안한 장본인이었기에 나린더의 믿음은 배신감과 증오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린더는 샤무라가 자신을 배신할 줄 몰랐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왜냐하면 샤무라를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라 착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린더가 주문을 외우자, 추종자가 부활한다.

샤무라는 나린더의 실험을 장려했으며 또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옛신앙 중에서 가장 중립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샤무라는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최후의 판단을 내리는 자였다. 실험을 허락했지만 그렇다해서 그 실험을 용인하지 않았다.
이런 샤무라의 지적 유연함은 나린더에게 정서적 수용으로 느껴졌고, 그 오해가 배신으로 돌아왔을 때 샤무라는 마음속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샤무라처럼 진보적인 인물은 왜 나린더의 개혁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그 해답은 샤무라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Death must be the end. Otherwise, what use would they have for Gods?”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우리 신들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샤무라는 죽음을 단순한 종말이 아닌 옛 신앙의 균형이자 신의 존재 근거로 여겼다. 그러니 죽음을 없애려 한 나린더는 가장 사랑했던 존재였지만 동시에 자신이 수호해야 할 신앙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컬트 오브 더 램의 비극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했던 두 존재가 정작 감정을 말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오해로 남았고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옛 신앙의 파괴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전해지지 못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텀블러에도 올렸으나 영어입니다~ 그래도 읽으실 분은 여기 클릭

  1. 샤무라의 대사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에, 이를 바탕으로 해석하였다. [본문으로]